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RMS 타이타닉 (문단 편집) == 침몰선 발견 == [youtube(jD5ipBPQrwY)] 1985년 미해군 소속의 심해탐험가 [[로버트 발라드]](Robert Ballard)[* 타이타닉호 발견 뒤 2년 후 [[비스마르크]] 호를 발견하였고 요크타운과 루시테니아 등 20척 가까운 2차대전 중 침몰한 선박들을 발견하였다. 지금도 각종 프로젝트를 통해 심해 탐사와 관련된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는 [[미 해군]]이 1960년대 바다에서 감쪽같이 증발한 두 척의 미 해군 [[원자력 잠수함]]인 USS [[스콜피온]]과 USS 쓰레셔를 찾아내는 작전에 참여했는데 당시 소련의 의심을 피하는 기만작전 겸 타이타닉의 잔해를 찾는 것으로 위장을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계획종료 전에 잠수함 두 척을 발견하면 남은 시간 동안 타이타닉호 잔해를 찾아도 된다는 허가를 받아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NGC]]에서 관련 다큐를 방영해준 적도 있다.] 밸러드는 잠수함 두 척의 잔해를 발견해 상부에 보고하고 남은 12일간 타이타닉의 흔적을 찾다가 마침내 뉴펀들랜드로부터 680km 떨어진 곳의 수중에서 최초로 타이타닉호 잔해를 발견, 심해카메라로 촬영했으며, 미국과 영국 학자들의 노력으로 심해 잠수정을 이용한 선체 파편 인양 작업이 성사되었다. [[파일:타이타닉 해저지도.jpg]] 수심 약 3800m에서 발견된 두 동강난 선체는 각각 약 600m 떨어져 있었으며, 약 20% 정도[* 굴뚝, 두동강 난 부위, 선미의 대부분의 선체, 가구 등]가 침몰 과정과 그 후의 과정에서 유실되었다. 선수는 침몰 뒤 15에서 30도 정도의 각도를 유지하며 해저 바닥을 향했고 앞부분부터 진흙 바닥에 처박히게 된다. 이 때 선수의 약 20m가 진흙 속에 파묻히게 됐다. 발견 당시에도 선수는 비교적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미는 선체가 여기저기 찢어져 있어서 훼손이 심했으며, 잔해들도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파손된 정도가 어찌나 심했는지 로버트가 "처음 발견했을 때 배가 아니라 철무더기 같다"라고 했을 정도. 선미는 시속 80km의 속도로 빠르게 가라앉았는데 거기에 반시계방향으로 회전까지 하고 있었다. 침몰하면서 물이 차곡차곡 차올랐던 선수와 달리 선미는 선체가 부러질 당시의 절단면이 바닥을 향했기 때문에 빠르게 물이 침투하면서 고압수가 선미 내부를 터진 풍선처럼 심하게 훼손시켰다. 거기에 빠른 속도와 선미의 회전은 주위에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배의 구조물과 각종 물건이 찢겨지듯 훼손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배의 모든 굴뚝은 침몰 과정에서 유실되었고[* 1번과 2번 굴뚝은 침몰 도중 옆으로 넘어졌고, 3번은 반으로 쪼개진 직후 앞으로 넘어졌으며, 4번은 선미가 수직으로 기울었을때즈음 떨어져나갔다.], 마스트가 선교루를 향해 쓰러지며 선교 지붕을 박살내 조타실이 노출돼 있었다. 유해는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7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심해의 고압과 유기물에 분해되어 없어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100m만 내려가도 수압때문에 온몸이 으깨지는데 타이타닉이 침몰한 곳은 해저 3700m이며 당연히 뼈도 추릴 수 없을 정도로 유해들이 훼손되었음은 물론,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기에 뼈들도 전부 유기물에 분해되거나 가루가 되고 해류에 휩쓸려 없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잔해를 탐사했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신발]]만 유독 많이 보였다고 한다. 잔해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모두 다 기뻐했지만 누군가 [[시계]]를 보고서 "그러고 보니까 침몰했던 시각 20분 전인데"라고 하자 분위기가 숙연하게 바뀌어 하나같이 침묵했다고 한다. 발라드는 배를 발견하고 한동안은 그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않았으며, 참사에서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세웠다. 또 잔해에서 '''단 한 개의 유물도 건지지 않았다.''' 1993년 9월에는 미국 조선 전문가 윌리엄 가츠키(William Gartzke)가 당시 기록을 근거로 타이타닉 호 침몰 참사를 미리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로 해석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생존자들은 배가 빙하와 충돌하는 순간 엄청나게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순식간에 가라앉았다고 증언했는데 그 소리는 저급 강철판이 만들어낸 대재앙의 신호였다는 것이다. 윌리엄은 건져올린 선체 파편을 연구한 결과 충돌시 휘지 않고 부서지는 질이 낮은 강철판을 사용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고급 강철판을 사용했다면 침몰을 막았거나 침몰시간이 지연되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타이타닉은 '''당시 기준으로는 최고급 수준의 강철판'''으로 지어졌다. 단지, '''당대 제강기술의 수준 자체가 현대보다 너무 낮았을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 당시로서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기술의 한계로 그 이상 좋은 강철판을 만들 수 없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황의 함유량이 많아 저질 취급받을 물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술이 발달한 (약 한세기 뒤의) 미래의 시선에서 볼 때 이야기고, 건조 당시에는 그것이 곧 최고급 강철판이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강철판은 황이 많이 섞인 것 때문에 낮은 온도에서 휘어지기보다 부서져버리게 된 것이다. 당시 한국어판 [[뉴턴]]에 이와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침몰로부터 100년이 지난 2012년 기준으로 가라앉은 배의 대부분이 부드러운 뻘 바닥에 파묻히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2019년엔 한 해저 탐사팀이 다시 한 번 타이타닉호 침몰 장소를 방문했는데[[https://m.news.nate.com/view/20190822n17668|기사]]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고 한다. 바닷속에 107년이나 있었으니 금속을 먹는 박테리아와 염분에 의한 부식+심해 해류의 영향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침몰 당시 손상이 심했던 배 뒷부분은 지금은 거의 다 파괴되어 흔적만 유지하고 있고, 카메론 영화판이 나오던 시기에도 존재했던 망루는 떨어져나갔으며, 발견 초기엔 형태가 그나마 남아있던 선장실은 완전히 사라진 채 한쪽 갑판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추정으론 지금도 하루에 3kg씩 부식되어 바닷속에 흩어지고 있으며 약 10년 뒤인 2030년경 즈음엔 현재 남아있는 부분들마저도 파괴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지극히 당연한 자연적 과정이다.''' 2020년에는 배의 일부분을 해체해서 유물들을 인양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유족들이 반대하고 있다.[[https://m.news.nate.com/view/20200122n17573|#]] 여담으로 타이타닉을 통째로 인양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대서양의 가혹한 해류+날씨+빙산이라는 위험요소가 너무 많고 수심 약 4,000m라는 심해에 있어 현대 과학 기술력으론 매우 힘들다.[* 부식되지 않았다면 불가능은 아니다.]만약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치더라도 위에 언급된 부식이 매우 심각해 살짝 건드려도 바스러질 수준이기 때문에 올리는 도중 작살나 다시 바다에 빠질 가능성이 높으며, 인양작업에 들어갈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담할 개인 혹은 기업이 있을지도 미지수다. 특히 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위에 언급된 탐사대들도 최소한의 조사에 필요한 샘플 이외에는 건드리지 않았을만큼 본격적인 인양은 금기시 되는 모양새라 타이타닉은 완전히 풍화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영원히 대서양 바닷속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참고로 유럽의 뱃사람들은 배가 탄생한 곳만큼이나 그 배가 침몰한 곳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마 타이타닉호의 침몰 장소가 수심이 3800m가 아니라 38m 수준으로 얕아 인양이 충분히 가능했다고 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1980년에 타이타닉 인양을 소재로 삼은 영화도 나왔는데 도중에 실패한다. 2030~2040년 쯤이면 박테리아 등으로 금속조차 분해되어 형체가 완전히 무너져 잔해들만 남을것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